원주 봉산동당간지주에서 마주한 두 석주의 고요한 위엄
늦은 오후, 햇살이 부드럽게 기울 무렵 원주 봉산동의 당간지주를 찾았습니다. 도심 외곽의 조용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갑자기 탁 트인 공터 한가운데, 두 개의 거대한 돌기둥이 마주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멀리서 볼 때는 단순한 돌기둥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 표면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과 섬세한 조각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바람이 불면 돌기둥 사이로 낮게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그 고요함 속에서 오랜 시간 이 자리를 지켜온 존재의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사찰이 사라진 자리 위에 남은 두 기둥이지만, 그 자체로 한 시대의 신앙과 예술을 증언하는 상징처럼 서 있었습니다.
1. 원주 도심에서의 접근 경로
봉산동당간지주는 원주시내 중심에서 약 10분 거리, 봉산동 마을 입구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면 ‘봉산동 당간지주’라는 표지판이 도로변에 설치되어 있어 찾기 어렵지 않습니다. 주변에 작은 공영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주차 후 도보로 3분 정도 걸으면 유적지에 도착합니다. 길은 완만하며 나무그늘이 드리워져 있어 걷기에 부담이 없었습니다. 입구에는 간결한 안내문과 함께 문화재 표석이 세워져 있었고, 돌계단을 오르면 두 기둥이 나란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도시와 가까우면서도 조용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고, 길가에서 들리는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유난히 또렷했습니다. 이동이 짧지만 여운이 긴 길이었습니다.
2. 단정하고 위엄 있는 구조미
당간지주는 사찰의 입구나 절터 앞에 세워졌던 기둥으로, 절의 깃발을 매달던 자리였습니다. 봉산동당간지주는 두 개의 화강암 석주로 이루어져 있으며, 높이는 약 4.5미터 정도입니다. 돌기둥의 단면은 직사각형이며, 윗부분에는 깃대를 고정하기 위한 홈이 파여 있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석재의 결이 곱고, 다듬은 자국이 일정한 간격으로 남아 있습니다. 두 기둥의 간격은 약 80센티미터 정도로 균형이 정밀하게 맞춰져 있었고, 하단의 받침 부분은 약간의 경사를 주어 안정감을 높였습니다. 단순한 구조이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위로 솟아오르는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빛의 방향에 따라 그림자가 바닥 위로 길게 드리워져 시간의 흐름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3. 봉산동당간지주의 역사와 의미
이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말기 또는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봉산동 일대에는 사찰이 있었으나,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있습니다. 두 돌기둥은 당시 불교 의식의 상징물이자 마을의 신앙 중심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에는 이곳이 ‘원주 지역 불교문화 확산의 중심지 역할을 한 흔적’이라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형태와 비례, 조각 기법이 정교하여 당시 석조 기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줍니다. 특히 지주의 상단부 홈과 측면의 가는 선각 장식은 단순하지만 세련된 미감을 전해 주었습니다. 사찰은 사라졌지만, 이 두 돌기둥이 그 정신을 지금까지 전하고 있는 셈입니다.
4. 세심하게 보존된 현장의 모습
당간지주 주변은 잘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기둥 아래에는 잔디가 고르게 깔려 있고, 안내문 옆에는 작은 나무 울타리가 둘러져 있습니다. 바닥에는 얇은 돌판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어 관람객이 가까이 다가가도 유적이 훼손되지 않도록 배려되어 있었습니다. 기둥 표면의 일부는 풍화로 인해 거칠었지만, 전체적인 형태는 온전히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비가 온 직후였던 터라 돌 표면이 촉촉하게 젖어 회색빛이 깊게 감돌았습니다. 햇빛이 기울며 기둥 사이에 금빛의 틈이 생기자 그 장면이 마치 하나의 그림처럼 느껴졌습니다. 관리가 과하지 않아 자연스러운 시간의 질감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5. 함께 둘러보기 좋은 인근 유적
봉산동당간지주를 둘러본 뒤에는 차량으로 5분 거리에 있는 ‘흥법사지 삼층석탑’을 찾았습니다. 두 유적 모두 통일신라의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함께 보면 시대적 연결이 뚜렷하게 느껴집니다. 또한 인근 ‘치악산자연학습장’은 가벼운 산책로와 전망대가 있어 여행 코스로 엮기 좋았습니다. 점심시간에는 봉산동 인근의 ‘원주감자옹심이거리’에서 따뜻한 국물요리를 즐기며 잠시 쉬었습니다. 유적을 중심으로 반나절 코스로 둘러보기 좋은 구성으로, 역사와 자연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동선이었습니다.
6. 방문 시 참고할 점
봉산동당간지주는 상시 개방되어 있으며, 입장료는 없습니다. 주차 공간이 좁으므로 주말보다는 평일 오전 방문이 편리합니다. 여름철에는 벌레가 많아 긴 옷차림이 좋고, 겨울에는 돌기둥 주변이 얼어 미끄럽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돌 위의 물기가 반사되어 독특한 색감을 보여주므로 사진 촬영에는 오히려 좋은 조건입니다. 단, 유적 보호를 위해 기둥에 손을 대거나 기대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해질 무렵 방문하면 석주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조용히 서서 그 사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무리
봉산동당간지주는 화려하지 않지만, 간결함 속에 깊은 울림이 있는 유적이었습니다. 사찰의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도 이 두 개의 돌기둥은 꿋꿋이 남아, 시대를 넘어선 신앙의 상징으로 서 있습니다. 세월에 닳은 표면마다 시간의 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바람과 햇살이 그 위를 스쳐 지나가며 또 다른 색을 더했습니다. 단순한 돌기둥이 아니라, 인간의 손으로 쌓은 믿음의 흔적이었습니다. 다음에는 눈 내리는 겨울에 다시 찾아, 흰 눈 위로 드러나는 석주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조용하지만 강인한 아름다움이 서린 이곳은, 원주의 오랜 역사와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공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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